1침묵은 동의인가?
동의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둘러싼 원칙의 문제다.
찬성 측은 대부분의 사람이 이미 기증을 원하니 법도 그렇게 전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대 측은 스스로 주기로 선택했을 때만 진정한 선물이라고 말한다.

장기 기증은 신장, 간, 심장, 폐 같은 장기를 이식이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기증되는 장기는 대부분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서 나온다. 이 토론의 쟁점은 ‘동의’다. 생전에 기증 여부를 밝히지 않은 사람에 대해 법은 무엇을 전제해야 할까? 미국이나 한국 같은 옵트인(opt-in) 방식에서는 스스로 등록한 사람만 기증자가 된다. 옵트아웃(opt-out) 방식에서는 거부 의사를 등록하지 않은 모든 성인을 기증에 동의한 사람으로 본다.
필요는 크다. 2026년 7월 기준 미국의 이식 대기자는 10만 9,817명이었고, 7분마다 한 명꼴로 대기자가 늘었으며, 날마다 12명이 기다리다 숨졌다.1 그런데 2025년 미국 정부 조사에서 성인의 93%가 장기 기증을 지지한다고 답했지만, 실제로 기증 등록을 한 사람은 53%뿐이었다.2 옵트아웃 찬성 측은 이 격차가 생명을 앗아 간다고 말한다.
양측이 가장 많이 다투는 사례는 스페인이다. 스페인 법은 1979년부터 추정 동의를 채택했다.4 2024년 스페인의 사후 기증자는 인구 100만 명당 52.6명으로, 스페인 정부는 이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본 적 없는” 수치라고 했다.3 하지만 2010년 스페인 장기이식 기구 책임자와 영국 의사 두 명은 스페인의 성공을 “추정 동의법 덕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썼다. 스페인에서는 언제나 가족에게 동의를 묻고, 진짜 변화는 전국 병원에 배치한 이식 코디네이터 체계였다는 것이다.4
영국은 더 최근의 증거를 보여 준다. 2015년 12월 웨일스가 영국에서 처음으로 옵트아웃으로 바꾸었고, 2020년 잉글랜드, 2021년 스코틀랜드가 뒤따랐다.151324 웨일스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가족이 기증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그 효과는 3년쯤 지나서야 나타났다.5 반면 잉글랜드의 동의율은 2019년 67%에서 2023년 61%로 떨어졌는데, 연구자들은 코로나19의 영향과 떼어 내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6
위험을 보여 주는 나라도 있다. 브라질은 1998년 모든 성인을 기증 동의자로 간주했지만, 사람들이 앞다투어 거부 등록을 했다. 포르투알레그리시에서는 주민의 83%가 거부했고, 정부는 1년도 안 되어 법을 폐지했다.11 칠레는 2010년 옵트아웃으로 바꾼 뒤 2012년 7월까지 270만 명 넘게 거부 등록을 했고, 처음 2년 동안 사후 기증자 수는 늘기는커녕 줄었다.12
미국에서는 옵트아웃을 택한 주가 하나도 없다. 2021년 네바다주가 첫 사례가 될지를 두고 논쟁할 때 키스 피카드(Keith Pickard) 주 상원의원은 “정부가 우리 몸과 개인의 자율에 관해 대신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합의였다”고 경고했다.16 미국인의 생각도 갈린다. 2025년 조사에서 53%는 전국적인 추정 동의제를 지지했지만, 37%는 그런 제도가 생기면 거부 등록을 하겠다고 답했다.2
한국은 옵트인 방식이다. 게다가 생전에 기증 희망 등록을 했더라도 실제 기증에는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28 2024년 말 장기이식 대기자는 5만 4,789명으로 늘었지만, 뇌사 장기 기증자는 397명으로 1년 전(483명)보다 17.8% 줄었다.27 시신에 손대는 것을 꺼리는 문화와 기증 제도에 대한 불신이 걸림돌로 꼽힌다. 옵트아웃을 도입해야 한다는 전문가도 있지만,29 사회적 합의 없이 도입하면 반발과 불신만 키울 수 있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28
결국 토론은 세 가지 질문으로 모인다. 침묵은 정말 동의를 뜻하는가? 법을 바꾸면 병상 곁에서 가족이 내리는 결정도 실제로 바뀌는가? 그리고 그 변화가 모든 기증 제도의 바탕인 사회적 신뢰를 해치지는 않을까?
옵트아웃 토론의 승부는 대개 다음 네 가지 질문에서 갈린다.
동의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둘러싼 원칙의 문제다.
양측 모두 같은 국가 비교를 들면서 다르게 해석한다.
모든 기증 제도는 의사가 환자를 위해 일한다는 사회적 믿음에 기대고 있다.
옵트아웃 국가에서도 대개 가족에게 묻는다.
유럽: 스페인은 법으로는 추정 동의제지만 언제나 가족에게 묻는다.4 옵트아웃인 오스트리아는 인구의 99.98%가 기증자 명단에 들어 있지만, 옵트인인 독일은 12%다.10 네덜란드는 2018년 아슬아슬한 표차로 옵트아웃 법을 통과시켰고, 독일 의회는 2020년 이를 부결했다.2320
영국: 웨일스(2015년), 잉글랜드(2020년), 스코틀랜드(2021년)가 모두 소프트 옵트아웃으로 바꾸었다.151324
중남미: 브라질은 1998년 1년도 안 되어 옵트아웃을 포기했고, 칠레는 2010년 제도를 바꾸었지만 수백만 명이 거부 등록을 했다.1112
미국: 모든 주가 옵트인 방식이다. 네바다주가 2021년 전환을 논의했다.16
한국: 옵트인 방식이며, 기증 희망 등록을 해도 가족 동의가 필요하다.28 2024년 이식 대기자는 5만 4,789명인데 뇌사 기증자는 397명에 그쳤다.27
토론 팁: 나라 간 비교는 양측 모두에게 쓸모 있다. 찬성 측은 여러 옵트아웃 국가의 높은 기증률을, 반대 측은 그 숫자를 법보다 병원 체계와 예산, 사회적 신뢰가 더 잘 설명한다는 점을 내세울 수 있다. 한국 사례를 쓸 때는 ‘등록률’과 ‘실제 기증률’, ‘가족 동의’를 구분해서 말하자.
수업이나 동아리 토론에 쓸 질문이다. 정답은 없다. 반드시 이유와 근거를 들어 말하게 하자.
도덕·사회 교과와 연결: 장기 기증은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공동체의 생명 구조가 만나는 문제다. ‘넛지(nudge)’처럼 기본값을 바꿔 사람들의 선택을 이끄는 정책이 어디까지 정당한지, 생명 윤리와 시민의 권리를 배울 때 함께 따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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