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국가에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있는가?
원칙의 문제다. 어떤 통계도 이 질문에 답해 주지 않는다.
존치론자는 어떤 범죄에는 가장 무거운 형벌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폐지론자는 한번 집행하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오판을 지적한다.

사형은 법원이 유죄를 선고한 사람의 생명을 국가가 빼앗는 형벌이다. 사형제를 유지하는 나라 대부분은 살인에만 사형을 적용하지만, 테러, 마약 밀매, 반역, 국가에 대한 범죄에 적용하는 나라도 있다.
한국은 사형제가 법에 남아 있지만 집행하지 않는 나라다. 마지막 집행은 1997년 12월 30일로, 이날 23명이 처형된 뒤 30년 가까이 집행이 멈췄다. 국제앰네스티는 2007년부터 한국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한다. 헌법재판소는 1996년(7 대 2)과 2010년(5 대 4) 두 차례 사형제가 합헌이라고 결정했고, 2019년 제기된 세 번째 헌법소원은 2025년 말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29 한편 한국갤럽 조사에서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2022년에도 69%였다.30 법과 현실, 여론이 서로 다른 곳을 가리키는 셈이다.
사형은 성문법만큼이나 오래됐다. 약 4,000년 전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에는 사형에 처하는 범죄가 25가지나 적혀 있었다.8 사형 폐지론은 훨씬 나중에 등장했다. 1764년 이탈리아의 체사레 베카리아는 국가에는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없으며, 짧고 끔찍한 형벌보다 확실하고 오래가는 형벌이 범죄를 더 잘 막는다고 주장했다.924
오늘날 세계는 둘로 나뉘어 있다. 2024년 말 기준 113개국이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했고, 법률상 또는 사실상 폐지한 나라는 145개국이다.1 그런데 기록된 사형 집행은 2024년 최소 1,518건으로 2015년 이후 가장 많았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세 나라가 그중 91% 이상을 집행했다. 해마다 수천 명을 처형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수치를 공개하지 않는 중국은 이 통계에서 빠져 있다.1
서구 민주국가 가운데 지금도 사형을 집행하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72년 모든 사형 집행을 중단시켰다가, 사형 선고가 덜 자의적으로 이뤄지도록 새로 만든 법에 따라 1976년 집행 재개를 허용했다.103 집행은 1999년 98건으로 정점을 찍었다.21 2024년에는 9개 주에서 25건이 집행됐고, 26명이 새로 사형을 선고받았다.4 여론도 식었다. 2024년 사형제를 지지한 미국 성인은 53%로, 50년 만에 가장 낮았다.2
유럽은 반대쪽 끝까지 갔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은 모두 사형을 폐지했고, 사형 폐지는 EU 가입 조건이기도 하다.26 EU 기본권 헌장은 이를 한 문장으로 못 박는다. “누구도 사형을 선고받거나 처형되어서는 안 된다.”25 EU 각국 정부는 사형이 “비인도적이고 불필요하다”며, 사형이 범죄를 억제한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가 없고, 오판이 한 번이라도 일어나면 국가가 무고한 사람을 고의로 죽이는 결과가 된다고 경고한다.26
미국에서는 누가 사형수가 되는지도 큰 쟁점이다. 흑인은 미국 인구의 13.6%지만 사형수의 41%를 차지한다. 또 실제로 사형이 집행된 사건의 피해자 약 75%가 백인이었는데, 전국 살인 피해자 가운데 백인은 약 40%에 불과하다.27 비판론자들은 인종이 여전히 사형 선고를 좌우한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존치론자들은 연방대법원이 이런 통계를 개별 사건의 차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반박한다.11
피해자 가족의 목소리도 하나가 아니다.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로 여덟 살 아들 마틴을 잃은 빌·데니스 리처드 부부는 2015년 검찰에 사형 구형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다. 사형이 “수년간의 항소로 이어져, 우리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날을 계속 다시 겪게 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28 그러나 배심원단은 결국 범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제 토론의 승패는 대개 이 네 가지 질문에서 갈린다.
원칙의 문제다. 어떤 통계도 이 질문에 답해 주지 않는다.
양측이 같은 연구를 놓고 다르게 해석한다.
사형은 결코 바로잡을 수 없는 유일한 형벌이다.
존치론자들조차 제도가 의도대로 돌아가는지 묻는다.
한국: 1997년 12월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다. 2025년 말 보도 기준 생존한 사형확정자는 57명이다. 정부는 2020년 처음으로 유엔 총회의 사형 집행 유예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29 그러나 국민 다수는 여전히 사형제 유지를 지지한다.30
미국: 27개 주가 여전히 법에 사형제를 두고 있으며, 나머지는 폐지했거나 집행을 중단했다.2
집행이 가장 많은 나라: 2024년 기록된 사형 집행의 91% 이상이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에서 이뤄졌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처형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수치를 공개하지 않는다.1
세계적 흐름: 145개국이 법률상 또는 사실상 사형을 폐지했다.1
토론 팁: 나라별 비교는 양측 모두에게 유용한 근거다. 폐지 측은 세계적 흐름을, 존치 측은 각 나라가 자기 가치관과 범죄 상황에 맞게 정해야 한다는 점을 내세울 수 있다. 한국 사례는 양쪽 모두 쓸 수 있다. 30년 가까이 집행 없이도 사회가 유지됐다는 점, 그리고 그 기간에도 국민 다수가 사형제 유지를 원했다는 점이다.

수업이나 동아리 토론용 질문이다. 정답은 없으니 이유와 근거를 들어 말해 보자.
도덕(윤리와 사상)·사회(정치와 법): 칸트는 살인자는 죽어야 한다는 응보주의를,7 베카리아는 확실하고 오래가는 형벌이 더 효과적이라는 예방주의를 내세웠다.9 두 사상가의 형벌관으로 우리 사회의 사형제 논쟁을 각각 설명해 보자.
권리, 억지 효과, 오판. 같은 사실을 보고도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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