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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관계핵잠재력

핵무기 대신 ‘문턱’을: 한국이 원하는 농축·재처리와 핵잠수함

정부는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거듭 말한다. 그러면서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권한, 그리고 핵추진잠수함을 얻으려 한다. 같은 기술을 두고 누군가는 에너지와 안보의 필요를, 누군가는 핵무장으로 가는 길을 본다.

글 Debatery 편집팀2026년 10월4분 분량
부산 해군기지에 들어서는 미국 전략핵잠수함 켄터키함

2023년 7월 19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부산 작전기지에 정박한 미국 전략핵잠수함 켄터키함에 올랐다. 길이 약 170m, 트라이던트-2 미사일을 20발가량 실을 수 있는 잠수함이다. 미국 전략핵잠수함이 한국에 온 것은 1981년 이후 42년 만이었다. 미사일 저장고를 둘러본 윤 대통령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핵전략자산을 직접 눈으로 보니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1

3년이 지난 지금 질문은 조금 달라졌다. 미국의 핵잠수함을 빌려 보는 것을 넘어, 한국이 직접 핵추진잠수함을 만들고 그 연료가 되는 우라늄을 스스로 농축할 수 있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2026년 5월 26일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장보고 N 사업’을 발표하며 “2030년대 중반에 핵추진잠수함 1번함을 진수하는 것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6

핵무기는 아니지만, 문턱까지

이 논쟁의 열쇳말은 ‘핵잠재력’이다. 지금 핵무기는 없지만 마음먹으면 짧은 기간 안에 만들 수 있는 기술과 물질을 갖춘 상태를 말한다.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한국은 2035년까지 미국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만 20% 미만으로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고,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도 미국의 승인이 필요하다. 반면 일본은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모두 갖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2025년 10월 협정 개정에 대해 “진전이 있고 일본 수준까지도 갈 수 있다”고 말했다.2

그해 11월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에는 한국의 민간 농축과 재처리를 미국이 정치적으로 지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2026년 7월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조건부 농축을 허용하는 협정까지 맺었다.3 전봉근 한국핵정책학회장은 농축 기술을 가진 나라가 14개국이라고 소개하며, 한국이 1975년 농축과 재처리를 포기한 뒤 처음으로 이를 되찾을 “정치적 기반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11

같은 기술, 엇갈리는 해석

정부는 군사적 목적을 분명히 부인한다. 안 장관은 핵잠수함에 핵무기가 아닌 재래식 무기를 싣고, 연료는 20% 미만의 저농축 우라늄을 쓰며,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협력하겠다고 했다.6 조현 외교부 장관은 핵무장 의도가 있다는 시각에 대해 “그보다 사실과 먼 이야기는 없다”고 반박했고,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의무를 버린다면 “또 하나의 북한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13

하지만 핵잠재력을 바로 억지력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5년 3월 한 토론회에서 “현재로서 가장 현실성 있는 선택지는 ‘핵 잠재력’ 향상”이라고 말했다.10 세계일보는 사설에서 “결국 북핵에 대한 억지력은 우리의 핵 잠재력(nuclear latency)뿐”이라고 썼다.4

북한은 정반대로 읽었다. 조선중앙통신은 팩트시트 발표 나흘 뒤 논평에서 한국의 핵잠수함을 “《자체핵무장》의 길로 나가기 위한 포석”이라 부르며 “핵도미노 현상”을 경고했다.5 국내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2026년 9월 핵잠수함 특별법에 반대하는 의견서에서, 이 사업이 “국제 핵비확산 체제를 약화”시키고 “중국과 일본 등 동북아 국가 간의 군사적 긴장과 군비경쟁을 고조”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14

여론이라는 역설

이 문제에는 묘한 역설이 있다. 한국인 다수가 핵무장을 지지할수록 농축과 재처리를 얻기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 회장은 “국민의 핵무장 지지도가 70%가 넘는 상황에서 과연 농축재처리 도입을 관철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정부가 아무리 비확산 의지를 밝혀도 “국내의 높은 핵무장 여론과 빈번한 정치인의 핵무장 발언을 볼 때, 핵확산에 대한 외부의 의구심을 해소하기에는 미흡하다”는 것이다. 그는 ‘비확산 기본법’ 같은 제도화된 약속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11

미국 국방부 산하 대니얼 K. 이노우에 아시아태평양안보연구센터의 김라미 교수는 미국이 엄격한 감시를 전제로 한국의 핵잠재력을 받아들이는 편이 그나마 덜 나쁜 선택이라고 본다. 그러면서도 핵잠재력이 널리 퍼지면 “세계 안보 환경은 훨씬 더 취약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12

협상은 쉽지 않다. 양국은 2026년 6월 서울에서 첫 공식 후속 협의를 열었고, 원자력협정을 역대 두 번째로 고치는 작업이 시작됐다. 문주현 단국대 교수는 “빠르면 1년 안에도 협상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 내다봤지만, 첫 개정 협상에는 4년 6개월이 걸렸다.7 8월 조 장관은 “머지않아 고위급에서 협상이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8 그러나 10월 중순 기준으로 후속 안보 협의는 멈춰 있고, 정부는 미국이 한미 정보 당국 간 갈등을 이 협의와 연결 짓고 있다고 보고 있다.9

생각해 볼 질문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는 것은 신중한 대비일까, 아니면 주변국의 의심을 부르는 일일까? 국민의 높은 핵무장 지지는 협상에서 한국의 힘이 될까, 걸림돌이 될까? 그리고 안보를 위해 미국의 핵잠수함을 빌려 보는 것과 우리 손으로 핵잠수함을 만드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독자적 핵무장을 둘러싼 양측의 논거는 아래 찬반 토론 가이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처
  1. 한지훈, 「尹, 美전략핵잠 미사일저장고 둘러보고 "안심된다"…외국정상 첫방문(종합)」, 연합뉴스(다음 게재), 2023년 7월 19일. 링크
  2. 김주환, 「위성락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日 수준까지"… 권한 확대 시사」, 서울신문, 2025년 10월 27일. 링크
  3. 조문정, 「美, 사우디엔 우라늄 농축 열어줬다 …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골든타임'은 지금」, 뉴데일리, 2026년 7월 25일. 링크
  4. 사설, 「'南 핵잠' 반발 北 적반하장, 군사회담부터 응하라」, 세계일보, 2025년 11월 18일. 링크
  5. 남빛나라, 「북, 한미 팩트시트에 "적대적 대결의지…대응조치 할 것"(종합)」, 뉴시스, 2025년 11월 18일. 조선중앙통신 논평 보도. 링크
  6. 강연주, 「정부, 핵추진잠수함 건조 '장보고 N사업' 발표…"2030년 중반까지 1척 건조"」, 경향신문, 2026년 5월 26일. 링크
  7. 손선희·송승섭·이한나, 「韓美, '체결 54년' 원자력협정 역대 두 번째 개정 시도…핵잠 별도 협정도 논의」, 아시아경제, 2026년 6월 2일. 링크
  8. 이한나, 「조현 "한미 원자력협정 후속협의, 머지않아 고위급 협상 예정"」, 아시아경제, 2026년 8월 5일. 링크
  9. 조영빈 외, 「핵잠, 한미 '정보라인 갈등'에 발목 잡혔나... 美 국무장관 "신뢰 훼손" 직접 언급」, 한국일보, 2026년 10월 14일. 링크
  10. 한도형, 「"미, 한국 자체 핵무장 허용 가능성 없어"」, 자유아시아방송(RFA), 2025년 3월 11일. 링크
  11. Jun Bong-geun(전봉근, 한국핵정책학회장), "Korea's nuclear future hinges on enrichment and reprocessing," Korea JoongAng Daily, July 7, 2026. 한영 대역 칼럼. 링크
  12. Lami Kim, "South Korea's Nuclear Latency May Be Washington's Least Bad Option," Foreign Policy, January 7, 2026. 링크
  13. Asia-Pacific Leadership Network, "South Korean Foreign Minister on Nuclear Latency Concerns," APLN, April 1, 2026. 링크
  14.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의견서] 「핵추진잠수함의 획득ㆍ운영 및 안전관리 등에 관한 특별법」에 대한 반대의견 제출」, 참여연대, 2026년 9월 6일. 시민단체의 입장. 링크